관상과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역사를 탐구하라는 과제가 떨어졌고, 부끄러운 이야기일수록 더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집안의 시조와 함께 세조를 도왔을 사람들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였다.
Ⅱ. 좌익공신(佐翼功臣)은 누구인가?
좌익공신은 1455년 세조의 즉위에 공을 세운 공신을 말한다.
수 없게 되었다. 우리는 스스로 耕作․耕食한다. 토지소유권은 인정될 수 없는 것인데도 국가가 이를 승인함은 부당하다. 우리는 끝까지 이를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.… 이런 지경이 된 것은 일본인의 소행이다. 조선의 지주도 일본인과 한 무리가 되었다.”(조선총독부『조선의 군중』1925).
세조를 바라보는 시각
1. 유교적 가치에 입각한 평가
-훌륭한 치세를 했다 하더라도 왕위를 찬탈하고 육신과 단종을 죽인 사실에 관해서는 용서받을 수 없다.
2. 현실론적 연구에 입각한 평가
-당시의 국내 상황으로 보아서는 강력한 통치력이 필요했고 수양대군의 등극은 당연한 귀결이
1. 시조의 정의
시조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걸쳐서 발생하고 정제된 서정 시가로써 조선조의 전 시기와 개화기까지 생명력을 유지해 온 민족 시가이다. 즉, 한민족의 고유한 예술양식의 하나로서 국문학상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녀오는 시가형식의 시조이다.
그러나 ‘시조란 무엇인가’하는 물
정난(癸酉靖難)을 통하여 안평대군(安平大君)과 황보인(皇 甫仁) ·김종서(金宗瑞) 등 3공(公)을 숙청하여 권력을 독차지한 끝에 1455년에 단 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자, 동조자를 규합하여 단종을 다시 왕위에 앉힐 것을 결의하고 그 기회를 살펴 단종 복위의 난을 일으킨 신하이다.
(1) 계유정난
(3)결과 신병주(2009).『조선을움직인사건들』p.66.새문사.
계유정난의 결과 수양대군은 정권과 병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다. 수양은 자신을 포함하여 정인지, 한명회, 권람 등 12명을 1등공신에 포함한 것을 비롯하여 43명을 정난공신에 책봉하였다. 이 때 성삼문 등도 3등 공신에 올랐다. 이들이 정